Nature에 대하여

미래의 딸에게:

(언젠가 인간과 역사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나이가 될 때)

오늘 아침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네가 아침 일찍 일어나 혼자 씻고 혼자 아침 밥을 먹고 스스로 옷과 가방을 모두 챙긴 다음에 혼자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단다. 학교에서 장기자랑 같은 게 있어서 일찍 가서 준비해야 한다며 말이지. Your my sunshine을 불렀을 게다. 너와 초상화(민주)는 노래를 불렀고, 김미국(여령)은 피아노를 쳤으며, 수예는 우쿨렐레를 연주했을 거야. 기억이 나니? 아빠는 가방과 첼로를 메고 너 혼자 등교하는 것이 걱정돼서 눈 부비며 잠옷 차림으로 자동차 키를 돌렸단다. 평소보다 한 시간 이십 분 정도 일찍 등교했다. 피곤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제 KBS홀에서 <베토벤을 만나다>라는 공연을 관람해서 평소보다 많이 늦게 잤거든. 오늘 있었던 일은 이렇게 대충 기록해 두고, 이제부터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다. 이 이야기는 아빠가 요 몇 년 동안 깨달은 것인데,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제법 쓸모있는 이야기란다. 이 글을 읽을 즈음에는 이미 너도 제법 많은 언어를 알게 돼서 스스로 생각할 줄 알고 또 스스로 생각하고 싶은 나이가 되었겠지. 중학생이 되었을지 고등학생일지 모르겠구나.

오늘 아빠가 말하고 싶은 단어는 딱 한 개란다. Nature라는 영어 단어야. 엄청 쉬운 단어지. 그런데 이 단어에 우리 인류의 정신세계사의 핵심이 들어 있단다. 이 단어는 이미 너도 잘 알거야. <자연>이라는 단어를 먼저 생각하겠지. 그래 <자연>이란다. 또 무슨 뜻이 떠오르니? <본성>이라는 낱말을 떠올릴 수 있다면 네가 그럭저럭 영어 공부를 한 것이다. 영어 사전을 한 번 찾아보거라. 그밖에도 여러 낱말들이 있다. 이것들을 아빠가 하나하나 설명할 수는 없고, 그럴 능력도 안 되니까. 딱 이 두 개의 뜻, <자연>과 <본성>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다. 우주 만물을 지칭하는 자연을 영어로 Nature라고 말하고, 우리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도 Nature라고 말한단다. 인간은 자연과 분명히 다른데도 인간에 대해서도 Nature가 되는 것이지. 우리 한국어로는 <자연>이라는 낱말과 <본성>이라는 단어가 명확히 구별되어 있음에도, 영어로는 그냥 한 단어 <Nature>가 된단다. 왜 그런지를 네가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

옛날 우리 인류의 조상들은 자연과 인간을 그다지 구별하지 않았단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 생각했던 것이고, 인간의 뿌리를 우주 삼라만상의 자연에서 찾았지. 이런 생각은 동양과 서양에서 큰 차이가 없었어. 서양사람과 동양사람의 DNA가 다르지 않을 테고, 인류의 역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하게 진행됐거든. 동양에서건 서양에서건 자연과 인간은 그다지 크게 분리되지는 않았지. 인간을 특별하게 생각하기는 했어도 자연과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보지는 않았어.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자연을 닮아야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 인간의 여러 모습 중에서 자연을 닮으면 좋은 것이고, 자연을 닮지 않고 인간 스스로 유별나게 톡톡 튀는 모습은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더라.

서양철학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시작한다. 그리스 철학자 중에는 탈레스, 아낙사고라스, 아낙사만드로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데모크리토스, 피타고라스 등등의 철학자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이들 철학자들은 자연의 근원을 탐구하면서 그것을 가장 중요한 지혜로 삼았어. 그 후 철학자 중의 철학자인 플라톤이 등장하는데, 플라톤 철학을 다소 간단하면서 거칠게 요약하자면, <자연의 본래의 모습>을 가장 높은 아름다움/올바름/좋음으로 봐서 인간이 할 일은 그것을 찾아내어 잘 알고 이해하는 것이었단다. 우리 인간이 자연을 잘못 이해하니까 거기에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것 같더라. 인간의 <본성>은 <자연>이 선물한 것인데, 그 진짜 본성에서 벗어나서 자연 그 자체로 분리되기 때문에 인간사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고대의 철학자들은 생각하더군.

플라톤의 자연 그 자체가 바로 <이데아>가 될 터인데, 몇 백 년이 지난 다음에 이 Nature, 그러니까 이데아, 즉 자연 그 자체가 더욱 강력하고 신성한 존재로 바뀐단다. 자연 중의 자연, 모든 자연 의 근원이 되는 자연, 곧 신God의 등장이었지. 기독교 사회가 되었어. 대략 플라톤 시대로부터 700년 정도 걸린 것 같다. 플라톤 철학에서 <이데아>를 <예수>로 바꾸면, 대체로 기독교라는 종교의 교리가 되지. 기독교의 교리가 플라톤 철학을 대체하는 성공했고, 그 시대를 “중세”라고 부른다. 이것은 너도 알 것이며, 그 이전을 “고대”라고 부르고.

중세는 자연 중의 자연, 모든 자연의 근원이 되는 자연, 절대자의 섭리가 온통 지배하는 시대였다. “섭리”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이렇단다. <자연계를 지배하는 원리와 법칙>. 법칙은 언제 어디에서든 항상 적용되어야 하는 원리를 뜻한다고 보면, <자연>이라는 단어는 <필연성>이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가 된단다. 좀 어려워졌구나. 좀 쉽게 설명하자면, 누군가 노예로 태어났다면 그것은 자연 중의 자연(절대자)이 그렇게 만든 것이고, 왕으로 태어났다면 역시 위대한 자연이 그렇게 선물한 것이라는 이야기란다. 노예의 본성과 왕의 본성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하늘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결정했다는 점이지. 인간은 함부로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로운 의지는 이런 자연의 결정 앞에서 함부로 대들 수도 없었지. 왕은 왕이고 노예는 노예였어. 누군가 왕따를 당하면 왕따를 당하도록 자연이 정한 것이므로 어떻게 제대로 저항할 수 있었겠니. 이런 시대가 자그만치 천 년 동안 지속되었단다. 그래서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말하지. 종교는 신을 칭송하고 찬양했지만, 동시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폭력에 저항할 수 없었다. 사람의 죽음조차 자연이 정한 본성에 따라 죽는 것이지. Nature(자연)은 Nature(본성)이란다.

그런데, 내 사랑하는 딸아, 서양과 동양을 함부로 구별하지 말거라. 지구촌에 사는 인류는 그다지 차이가 크지 않아요. 앞에서 설명한 역사는 서양만 그랬던 것은 아니란다.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였어. 동양에서도 자연과 사람을 그다지 분리하지 않는 경향은 어디에서나 있었지. 천륜을 지키는 것이 인륜이었으며, 하늘의 도는 인간의 도여야 했단다. 동양사람들도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기를 노래했으며, 자연은 언제나 신의 모습으로 비쳐졌단다. 유교, 도교, 불교, 힌두교 모두, 자연의 섭리를 절대적으로 따랐고, 자연스럽게 운명에 저항하지 않는 것이 좋은 일처럼 생각했단다. 그래서 서양과 마찬가지로 동양에서도 노예는 노예며, 왕은 왕이었단다. 이것은 동서양에 차이가 없었지. 중동지역에서는 지금까지 1500년간 이슬람교가 지배해 왔다. 이슬람교도 그 뿌리가 기독교와 맞닿는 부분이 있는데, 모든 자연을 지배하는 절대자를 숭배해야 하며, 절대자 이름으로 교육되는 교리를 인간이 함부로 대들 수 없었지. 말씀이 곧 자연이었으며, 자연이 곧 말씀이었으므로, 지구 전체가 자연이 지배하고, 자연을 인간의 본성으로 삼게 되었단다.

그런데 아주 기묘한 일이 서양에서 발생했지. 자연에 맞서려는 완전히 새로운 생각이 출현했단다. 인간에게는 생각하는 힘이 있고, 그 생각하는 힘은 왕과 노예의 차이가 없으며, 누구나 공평하게 그런 힘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생각하는 힘은 자유로운 상태여야 가능한데, 그렇다면 <개인>의 자유가 필수적이지 않겠냐는 것이지. 운명은 하늘의 결정이므로 무조건 순응해야 한다고 아주 오랫동안 당연히 생각해 왔는데, 인간 스스로 새로운 운명을 만들 수도 있다고도 생각한 거야. 그러려면 역시 인간에게 <자유>가 필요했지. 자유가 있어야만 생각하니까. 노예는 생각을 못해. 생각할 여유/지식/경험이 없거나, 생각을 하면 더 괴롭거나. 어째서 괴롭겠니? 자유롭게 생각하면 의지가 생기는데, 노예에게는 순종하는 거 말고 의지가 허락되지는 않으니까. 다시 다르게 말해 보면, 자유가 있어야만 더 나은 운명을 만들고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의지>가 생길 테니까. 자유가 없으면 의지도 없고, 의지가 없다면 자유은 자연에 승복하지 않겠니.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 사람들은 이 세계를 창조한 절대자가 그런 자유의지를 선물한 것이라고 확신했단다.

지금이야 이런 생각이 당연하잖니? 인간의 자유는 오늘날 상식이 됐고, 헌법의 권리가 되었으며, 인권이며, 누구나 자유의지를 갖고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사람들은 믿지. 하지만 유럽에서 몇 백 년 전에는 이런 상식적인 생각이 매우 급진적이며 위험한 사상이었어. 그런 생각의 거대한 흐름을 계몽주의라고 부른단다. 아빠가 좋아하는 칸트 할아버지는 계몽주의를 완성한 사람이라고 아빠는 메모하고 있지. 어쨌든 계몽주의가 없었다면 현대의 인류는 없었다. 계몽주의는 인류에 빛을 선물했는데, 그 빛은 우리 인간이 <자연>에 종속되는 게 아니라 벗어날 수 있음을, 자연이 정한 운명이라는, 신이 결정한 본성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나서, 인간 스스로, 인간 한 명 한 명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빛이었어. 요즘 들어서 뭘 좀 아는 척하는 사람들 중에는 함부로 계몽주의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다시 말하지만 계몽주의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인류의 번영은 가능하지 않았을 거야. 계몽주의는 자연이 정한 운명들, 신분이나 계급 같은 것의 권위를 부정하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와 자유의지를 칭송하고, 인간의 창조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자극하고 보장해줬단다. 바로 그것이 서양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정신적인 자양분이 되었을 거야.

인간이 자기 본성, 즉 운명에 저항하는 역사는 쉽지만은 않았어. 자연이 완벽하게 인류를 지배하는 세월이 천 년이 넘었으니까 어떻게 수십 년만에 간단하게 바뀌겠니. 수백 년이 걸렸고, 그 수백 년 동안 혁명과 내전과 전쟁이 발생했단다. 수백만, 수천 만명이 죽었다. 자유를 위해서. 자연이 정한 본성에 지지 않으려고. 자연이 정한 본성이란 무엇이겠니? 그것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자유롭게 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힘든 것이란다. 인종, 민족, 신분, 종교, 젠더, 지역 같은 것이란다. 우리 인류는 “자연이 정한 본성에 따라” 인종, 민족, 신분, 종교, 젠더, 지역에 따라 사람을 차별했지. 차별은 당연했고, 심지어 함부로 사람을 죽였어. 그러나 “자연에 맞서 자유를 지키기 위한 오랜 싸움 끝에” 인종, 민족, 신분, 종교, 젠더, 지역에 따른 차별이 곳곳에서 추방됐단다. 자유에 대한 대가로 수백, 수천 만 명이 죽어가면서 말이지. 

한국의 역사 대부분은 동양의 다른 나라처럼 자연이 완벽하게 지배한 역사이며, 개인에게 허락된 자유는 아주 적었던 것 같다. 신분을 넘어서는 개인의 자유란, 개화 이전에는 거의 없었지 않았을까? 개화 이후에 수입되었으며, 그 역사도 고작 100년에 불과하지. “개화”란 무엇인가? 역사 시간에 배웠겠지만, 아빠는 좀 다르게 생각한단다. “자연에 맞서기 시작하는 계기”로 해석하고 있지. 인종, 민족, 신분, 종교, 젠더, 지역이 정한 차별을 인식하고 맞서기 시작하는 때로 해석하는 아빠는 지금도 개화기라고도 생각해.

그런데 자유와 자유의지는 어디에서 나올까? 서양에서 “이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그것이 충분히 준비되지 못했다. 자유와 감정은 어울리지 않지. 자유와 이성이 어울리는 것인데, 많은 한국인이 그것을 잘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더구나. 너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본은 한국보다 사정이 훨씬 좋았지. 더 일찍 개화했으며, 더 많은 사람이 서구의 정신세계를 받아들였어. 그러나 당시 일본의 권력자들은 서양의 정신보다는 물질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고, 결국 서양의 정신세계는 추방되고 그 껍데기만 채용돼서 군국주의의 길로 타락했다. 전쟁이 벌어졌고, 수많은 목숨이 희생됐다. 많은 사람이 오해를 하는데, 서양의 진정한 힘은 발달된 기술과 경제력이 아니라 인간 자유의지의 정신이란다. 모든 시대에서 개화란 물질이 아니라 정신임을 네가 깊이 생각해 주기를 아빠는 바라는구나.

오늘날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이 세계 도처에서 테러를 일삼고 이슬람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발발하고 있잖니. 이슬람교가 나빠서는 결코 아니지. 세속화되지 않은 이슬람 세계는 여전히 자연이 지배하는 사회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아빠는 생각한다. 그곳에서는, 자연(절대자)이 정하는 섭리가 여전히 강하지만, 인간 개인개인의 자유가, 자유의지가 21세기 맞지 않게 지나치게 연약하지 않나 생각하는 것이지. 자연이 강하면 자유가 약하고, 자유가 약하면 대다수의 인간은 폭력에 노출된단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역사이며, 동양에서도 그랬고, 서양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이슬람 세계는 아직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더구나. 하지만 지금의 이슬람교보다 더 무서웠던 기독교가 그랬던 것처럼, 이슬람 세계도 언젠가는 결국 인간의 자유의지가 자연에 맞서면서, 종교가 정한 본성에서 해방되지 않을까 아빠는 생각해.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지.

아빠가 언젠가 네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자연의 반댓말은 인간이 아니야. 자연의 반댓말은 “자유”란다. 어째서 인류가 곳곳에서 다양성을 옹호하며 자기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싸워왔으며 싸우고 있는지를 네가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태어나면서 네게 주어진 어쩔 수 없는 본성이 있더라도, 혹은 네가 선택하지 못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네게 있을 것이고, 그 힘을 이용해서 지혜롭게 맞서거라. 그 힘은 우리 인류 조상이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수백 만, 수천 만명이 생명을 바치면서 기어이 지켜낸 힘이지. 그것은 “너의 자유의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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