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선 공약같은 거 보지 말자

지난 번에 문재인 후보의 제1 공약인 <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 창출> 공약이 얼마나 헛된 공약인지, 산수 착오가 어떤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설명했어.일자리 “창출”, 이것은 없던 것을 만드는 거겠지. 그것도 공공부문에서 말이야. 81만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자.

나는 사실 이것저것 후보들의 공약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려고 했어. 주제 파악하라고? 네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니? 착각도 자유셔. 그래, 난 그저 평범한 사람이지. 범인이 함부로 정책 평가를 하는 게 웃긴 일이긴 하지. 정책을 만드신 분들도 다 이것저것 생각하고 공부도 하고 토론도 하고 만든 거겠지. 그렇지만 말이야. 돌아다녀 보면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300명이 아니라 거의 삼십 만 명 수준인 것 같고, 모두가 다 정치 전문가이며, 하나 같이 정책통이지. 뭐, 권위랄 게 있니. 이 직접 민주주의의 거대한 연회장 같은 곳에서는 모두 정당인인 셈이야. 인물이 너무 많다 보니 실력이라는 것이 하찮게 돼버렸어. 그래서 나보다 못한 범인이라도 어딘가에서 의자 하나 넉넉히 차지할 수 있고 제법 목소리도 낼 수 있겠지.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정책 팸플릿이나 읽고 끄적이는 거였는데. 그것도 이제 그만 하려고 해.

한국의 위대한 정당인들은 별로 정책에 관심이 없어. 정책은 지극히 냉정한 작업의 결과이며 가장 이성적인 성과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 5000천만이라는 숫자가 장난이 아니니까 말이야. 하지만 저 수많은 정치인들은 이성보다는 감정을 선호하지. 이쪽이냐, 저쪽이냐가 중요하지. 정책이 무엇이든 승리만 하면 돼. 정책에는 관심이 없어. 정책을 예쁘게 치장한 인테리어는 좋아하지. 번지르르한 모델 하우스에 감탄하겠지. 하지만 화려한 장식물 안에 보이지 않는 곳의 재료와 구조를 좀처럼 걱정하지는 않아. 조화와 환경은 더더욱 관심 밖이지. 복잡하게 생각해야 하니까. 사람들이 이러하니, 정책 만드는 일도 그럴듯하게만 하면 되는 일이야. 바보야,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다 쓸모없는 일이야. 선거는 분위기야. 대중이 알아서 환호하게 뜨겁게만 만들면 돼.

그래서 요즘 나는 시끄러운 창문을 닫았어. 그냥 플라톤의 책이나 읽으면서 국가에 대한 해묵은 공부를 해. 나 같은 재미 없는 사람에게는 이게 훨씬 재미있더군.

내가 문재인 후보 공약 하나 비판했어. 그런데 안철수 후보와 심상정 후보 공약을 다루지 않으면 매우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들어. 그렇지만 이게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자괴감이 커서 몹시 귀찮아졌어.

간단하게만 말하자.

안철수 후보의 공약순위 1이 이거야. <튼튼한 자강안보를 토대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온갖 좋은 표현은 다 모아 놨어. 첨단 국방력 건설로 강력한 자강안보 구현, 한미동맹 강화와 동북아 평화체제 병행 추진, 4자회담과 6자회담 재개 추진, 평화외교-통일외교-선진통상외교 추진, 5. 평화로운 과정으로서 통일 추진. 뭔가 많이 정리했어. 그런데 참 이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해. 첫째 공약순위 1번인데도 신선함이 대단할 정도로 전혀 없다는 뻔뻔함, 둘째, 이렇게 구태의연한 정책을 공약순위 1번으로 올려놓는 대범함, 셋째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한반도 정세가 이토록 위중해서 높은 수준의 창의성과 전략이 필요함에도 나사가 여러 개 빠진 것처럼 상호 논리 모순되는 정책을 명료한 방향 없이 나열하는 몽롱함. 어떤 교수가 관여했겠지. 어떤 높은 정치관료가 지시했는지도 모르지. 이거 하나만 봐도, 적어도 <정책과 전략>에 관해서, 안철수 후보 주위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 알 수 있겠지. 문재인 후보 주위에 권력을 애호하는 사람이 아주 많이 모여 들어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별로 없다는 속담을 인용해 볼 만할지도 모르겠어. 무능한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면 유능한 사람의 존재가 희석화되니까 말이야. 그렇지만 누가 봐도 세가 부족한 안철수 후보 캠프라면, 적어도 소수라면, 그 소수는 정예가 돼야 하지 않겠어? 정책집을 보면 참 한숨이 나와. 어쨌든, 공약 1순위에서 정책을 치장하는 수사를 지워버리고 간명하게 메시지를 정리하자면 이 정도가 될 것 같군. 친미자주. 강력한 안보, 유연한 외교, 항구적 평화.

심상정 후보. <노동이 당당한 나라>, <내 삶을 바꾸는 대통령>. <노동존중 정부로 국민의 삶을 바꾸겠습니다.> 뭔가 멋져 보이지만, 운동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나 할까. 기본적으로 운동권 출신 정당은 어디까지가 국가의 한계인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해. 국가의 한계, 그 지점이 좌파의 새로운 시작점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거야. 그래야만 그들의 습관적으로 고안해내는 “소비에트적 발상”, “소비에트적 정책”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들은 국가의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어. 국가가 어떻게 개인과 시장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니? 국가를 그렇게 (의도하지 않게) 빅브라더를 만들려는 관념과, 좌파 특유의 개인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이 서로 충돌한다는 것을 어째서 보지 못할까? 심상정 후보의 정책은 국가의 강력한 법률의 규제를 통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거야. 폐지, 금지, 제한, 의무, 보장 등이라는 단어들은 모두 국가의 강제권한을 발동하는 것을 전제로 해. 나로서는 정의당의 빈곤한 상상력과 빈약한 현실성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해. 뭔가 보통사람들, 월급을 주고 월급을 받는 보통사람의 인생이 ‘이론적으로만’ 취급된다는 생각도 들어. 시장과 국가는 어떤 관계일까? 개인의 인생과 국가의 역할은 어떤 관계일까? 약자에 대한 깊은 연민, 올바름에 대한 견고한 태도야말로 심상정 후보 캠프의 빛나는 장점이지만, 이 장점은 더욱 빛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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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한국사회가 잘 됐으면 좋겠어. 그다지 희망적이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나 우리 어린 세대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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